음악 감상실

[스크랩] Bee Gees

라인 빌 2020. 6. 28. 13:57

 

 

 

- Massachusetts -

by Bee Gees

Fell I'm going back to Massachusetts
Something's telling me I must go home
And the light all went out in Massachusetts
The day I left her standing on her own

- 메사추세츠 -

나는 매사추세츠로 돌아가네
무엇인지 나를 집으로 이끄네
내가 그녀를 버린 그날,
매사추세츠는 암흑이었네

Tried to hitch a ride to sanfrancisco
Gotta do the thing I wanna do
And the lights all went out in Massachusetts
They brought me back to see my way with you

샌프란시스코로 히치하이크 하려 했네
내 원하는 일을 해야 하겠어
매사추세츠는 암흑이었는데
난 당신에게 돌아가고 있네

Talk about the life in Massachusetts
Speak about the people I have seen
And the lights all went out in Massachusetts
And Massachusetts is one place I have seen
I will remember Massachusetts

매사추세츠에서의 인생을 이야기하려네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말해 보려네
매사추세츠는 암흑이었어
내가 아는 곳은 매사추세츠 그곳인데
매사추세스를 기억하라

 

Songwriters: GIBB, BARRY / GIBB, MAURICE ERNEST / GIBB, ROBIN HUGH

 

1959년에 영국에서 호주, 브리즈번으로 이민

 

'비지스'는 3형제 그룹입니다.

1946년에 맏형 베리 깁이 태어났고 3년 후 쌍둥이 로빈과 모리스가 태어났습니다.

모두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비지스(Bee Gees)'라는 그룹이름은 깁 형제들(Brothers Gibb)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실패한 음악인들이었습니다.

'비지스'가족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1959년 호주 브리즈번으로 이민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비지스'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초기 식민지 시대처럼 호주로 유배당한 셈입니다.

영국에서 가난했던 부모는 돈 벌러 다니느라 우리 3형제가 말썽을 피우는 걸 몰랐습니다.

결국 경찰이 우리를 끌고 집으로 가서 딱 세마디 했다. 20 파운드 플랜!"

 

"20파운드 플랜'은 인구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호주정부가

영국의 극빈자들을 상대로 20파운드만 내면

호주에 정착시켜 주겠다고 약속한 이민정책이었습니다.

그 당시 20파운드는 호주로 오는 배에 탈 수 있는 1인 편도요금에 불과했습니다.

 

200년전에 영국은 빈민들을 죄수로 둔갑시켜서 식민지 호주로 유배시켰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십중팔구 범죄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비지스'3형제를 호주로 유배시켜버린 것입니다.

'20파운드 플랜'등의 노래는 그런 사연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비지스'3형제의 공통점은 학교 다니는 걸 싫어하고

밤낮없이 노래 부르고 연주하기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11-14살의 나이에 그룹을 만들어서 클럽과 바에서 공연했습니다.

지금도 있는 서퍼스파라다이스의 파라다이스의 '팜 라운지(Palm Lounge)'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시드니에서 혹사당한 '비지스'

 

3형제는 음악을 좋아하기도 햇지만, 그들의 수입이 가족 전체의 생계 밑천이어서

어쩔수 없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62년 큰 꿈을 안고 시드니로 활동무대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13-16세에 불과한 3형제는 시드니에서 혹독한 시련을 껶게 됩니다.

 

그나마 나중에 주목에 받은것은 그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큰형 베리의 천재적인 작곡솜씨 덕분이었습니다.

베리의 아버지조차 아들의 작사, 작곡 솜씨에 놀라곤했습니다.

15-17살의 어린 나이에 어른들이나 느낄수 있는 사람의 상처를

서정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베리는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시드니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호주는 비틀즈를 능가하는 우리 3형제의 실력을 도무지 인정해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아픔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비유해서 노래를 만들었다.

'나를 잊지 마세요(Don't forget to remember)도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To love somebody)

'비지스'의 베리 깁이 16살에 시드니에서 작곡한 노래입니다.

'시드니에서의 활동은 비극 그 자체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동생들(쌍둥이 로빈과 모리스 당시 13살)에

좀처럼 웃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거의 매일 고물자동차를 타고

5-6시간씩 달려가 와가와가, 카우라, 리즈모어, 비가 등에서 공연을 했다.

 

그런데도 동생들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러면 동생들을 때려주었다.

그렇게 활동하면서 우리 3형제는 실력을 연마했다.

아니 당장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매일 공연했다.

 

'나는 남자다 용감한 남자다. 그런데 당신은 모른다. 당신은 정말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을...누군가를 사랑할때 어떤 식으로 사랑하는 지를"

이라는 내용의 가사를 부를 때마다 나는 지금도 목이 멘다.

언뜻 연인에게 하는 얘기 같지만 사실은 동생들에게 전하는 형의 절규였다"

-Berry Gibb-

 

"내가 조크를 시작했을 때 세상은 울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울기 시작했을 때 세상은 웃기 시작했습니다"라는

가사에도 시드니와 얽힌 절철한 사연이 있더군요.

비틀즈 극복하러 다시 영국으로

 

시드니 '로열호주역사확회'건물 뒤쪽에 3형제가 소속됐던 페스티벌레코드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혹사당하고 착취당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는

'노예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그러나 3형제의 뛰어난 가창력과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하모니에 대한 소문이 영국으로 전해졌습니다.

그 결과 RCA,EMI등에서 프로포즈를 받았지만

페스티벌레코드사에서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호주에서 사라졌습니다.

 

1967년1월3일 무작정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탄 것입니다.

그들은 인도양과 수에즈 운하를 거쳐서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주머니에 몇 백 파운드밖에 없었으니. 그야말로 빈털터리의 귀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음악계는 '혈연으로 연결된 하모니'가 성공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불과 며칠 안에 폴리돌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비지스(Bee Gees)"라는 그룹 이름도 그때 만들었습니다.

Gibb 형제들의 이름을 합성한 것이었지만

비틀즈와 비슷한 발음으로 만든 것은 지극히 상업적인 이유였습니다.

'비지스'의 첫 빌보드 1위곡인 매사추세스'

이곡에 얽힌 스토리는 더욱 기가 막힙니다.

실제 이 음악의 배경은 호주 내력의 와가와가(Wagga Wagga)였습니다.

하루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7시간을 운전해서 와가와가에 갔습니다.

 

중간에 비에 미끄러져서 죽을 고비도 엄겼고요.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해보니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됐습니다.

그냥 돌아오면서 그들은 많이 울었답니다.

그 가사를 메사추세스로 바꾼겁니다.

'그녀를 혼자 남겨두고 캘리포니아로 돈 벌러 가는 날.

메사추세스 도시 전체가 깜깜해졌고...'라는 가사가 나오지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비지스'는 미국 진출을 노렸다

 

그러면서 내 놓은 음반이 '1941년 뉴욕 광산의 참사(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였습니다.

중간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오는 애절한 노래입니다.

'미스터 존스, 내 아내를 만나본 적 있나요?(Have you seen my wife, Mr. Jones?)

그렇다고 큰소리로 말하지는 마세요 (Don't go talking too loud)

갱도가 무너져 내릴지도 몰라요 미스터 존스(You'll cause landslide, Mr. Jones)"

전형적인 팝 발라드이지만 '비지스'특유의 서정과 비애가 듬뿍 묻어나는 명곡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광부가 동료광부와 함께 무너져 내린 막장에 갇혀서

나는 대화를 가사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조되지 못햇다고 합니다.

 

베리 깁은 시드니에 거주할때

뉴스를 접한 뉴캐슬 지역에서 사망한 광부들을 떠올렸습니다.

그가 10대를 보낸 호주는 아름답고 제법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와 서민의 삶은 부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결국 '비지스'는 '1941년 뉴욕 광산의 참사'라는 특이한 제목의 노래를 통해서

호주의 비극을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비지스'의 히트곡은 주고 영국에서 작곡됐지만

노래의 배경들은 대부분 호주와 노동게층입니다.(70-80년대의 디스코 곡 제외)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에 겪었던

고단한 삶과 사랑의 경험이 노랫말과 곡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비록 상업적인 이유로 노래 제목에다 뉴욕이나 메사츄세스등을 넣었지만

사실은 그들의 슬펐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시드니나 브리즈번, 뉴캐슬 등의

추억을 노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슈퍼그룹 ‘비지스’가 역사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70~80년대 전설적인 팝그룹 ‘비지스’의 둘째 로빈 깁이 암 관련 합병증으로 투병해오다

62세로 사망했습니다.

로빈 깁은 1949년 영국 인근의 맨 제도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민 간후 1963년 형 배리 깁, 쌍둥이

동생 모리스 깁 과 함께 비지스로 데뷔했습니다.

데뷔 초기 청아한 화음으로 ‘홀리데이’ ‘퍼스트 오브 메이’ ‘매사추세츠’ 등의 히트곡으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비지스는 197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을 주도한 ‘토요일 밤의 열기’의 빅 히트로 전세계에서 2억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199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비지스는 2003년 쌍둥이 동생 모리스 깁의 사망으로 사실상 해체했으며 로빈 깁은 2010년 이후 결장암과 간암으로 투병해 오면서도 얼마전 신곡을 내는 등 활동 재개를 원해 팬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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