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골짜기 [오쇼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홀로 있는 것은 아름답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아름다우며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아름답다. 이것은 서로 반대되는 상태가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즐거워할 때는 즐거워하라. 최대한으로 그 상태를 즐겨라. 홀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해받을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에게 질리면 홀로 있는 상태로 돌아와 그 상태를 최대한 즐겨라.
선택하려고 애쓰지 말라. 선택하려고 하면 어려움에 빠진다. 선택은 그대의 내면에 단절을 만들어낸다. 내면을 두 조각으로 갈라놓는다. 왜 선택을 하는가? 그대는 양쪽 모두 가질 수 있는데, 왜 하나만 가지려고 하는가?
나의 가르침은 오직 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바로 ‘명상’과 ‘사랑’이다. 명상을 통해 거대한 침묵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삶을 노래와 춤,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 그 둘 사이를 움직여야 한다. 어떤 노력도 없이 쉽게 움직일 수 있다면 삶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얻는 것이다.
명상과 사랑, 홀로 있는 것과 타인과의 관계, 섹스와 침묵, 이 사이의 갈등은 수세기에 걸쳐 가장 커다란 문제였다. 표면적으로 다르게 표현될 뿐 문제는 하나이다. 그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사람들은 고통받았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선택한 사람은 ‘세속의 사람’이라 불렸고, ‘홀로 있기를 선택한 사람’은 ‘승려’라고 불렸다. 그러나 둘 다 고통을 받았다. 반쪽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반쪽의 삶은 고통스럽다. 삶 전체를 살아야 건강하며 행복을 느낀다. 전체로 사는 삶이 완전한 삶이다. 반쪽을 선택해서 살아가면 다른 반쪽이 말썽을 부린다. 복수하려고 한다. 나머지 반쪽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대의 반쪽이기에 그대의 본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생겨난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산이 골짜기 없이 존재하기로 하는 것과 같다. 골짜기가 없으면 산도 존재할 수 없다. 골짜기 없는 산은 이제 산이 아니다. 산이 없는 골짜기는 이제 골짜기가 아니다. 골짜기가 없는 듯 위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골짜기는 존재한다. 숨길 수도 있고 무의식 깊은 곳에 묻어 놓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골짜기는 존재한다. 없앨 방법이 없다. 골짜기와 산은 하나이다. 사랑과 명상도 그렇다. 관계와 홀로있음도 그렇다. 홀로있음의 산은 관계의 골짜기 안에서만 솟아오를 수 있다.
- 오쇼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