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기에 맞이하는 가을
어디쯤 왔을까?
가던 길 잠시 멈추고 뒤돌아 보지만
온 길 모르듯 갈 길도 알 수 없다.
힘을 다하여 삶을 사랑했을까?
마음을 다하여 오늘을 사랑했을까.
낡은 지갑을 펼치면
반듯한 명함(名銜) 하나 없고,
어느 자리 어느 모임에서
내세울 이름도 없는 아쉬움으로
지금까지 무얼 하고 살았을까 하는
후회는 또 왜 이렇게 많을까.
그리움을 다하여 붙잡고 싶었던 사랑의 순간도,
사랑을 다하여 매달리고 싶었던 욕망의 시간도,
황혼기의 가을 앞에 서면
모두가 놓치기 싶지 않은 추억인데.
그래, 이제는 어디로 흘러 갈 것인가를 걱정하지 말자.
아쉬움도 미련도 앨범 속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황혼기에 맞이하는 가을 앞에서는
그저 오늘이 있어 내일이 아름다우리라!
그렇게 믿자.
그렇게 믿어 버리자!
나이가 들면서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알고 싶은 게 많아진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이해될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해하려 애써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나이가 들면
무조건 어른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른으로 보이기 위해 항상 긴장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편해질 줄 알았는데,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더 많이 이해해야 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끝없이~
끝없이~
나이가 들면서
짙은 향기보다는 은은한 향기,
폭포수보다는 잔잔한 호수가,
화통함보다는 그윽함이,
또렷함보다는 아련함이,
살가움보다는 무던함이,
질러가는 것보다
때로는 돌아가는 게 좋아진다.
천천히 눈을 감고
천천히 세월이 이렇게
소리 없이 나를 휘감아 가며
끊임없이 나를 변화시킨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나를
나이가 들면서 오늘 여기 살아 있지만,
그래서 나는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리라
마음먹어 봅니다.
-김동길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