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이번 가을에는 그동안 버려 두었던 단어 몇 개를 내 가슴에
품고 마음 깊이 스며들도록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 감사. 사랑. 평화. 순결. 용기. 자유. 겸손.
지혜. 용서. 고독. 진실. 동행. 영원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아직도 행하지 못한 몇 가지 일들을 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하기. 욕심 버리기. 단순하기. 따뜻하기. 깊이 생각
하기. 목소리 낮추기. 격려하기. 칭찬하기. 오래 참기. 많은 나
누기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내 이웃을 향해 조용히 다가
갈 것입니다.
그분들은 외로운 사람. 가난한 사람. 마음에 상처입은 사람. 슬
픔 속에 있는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몸이 갇힌 사람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자연의 모습을 텅 빈 마음
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것은 붉은 단풍 위에 펼쳐지는 쪽빛 하늘. 황금 들판. 투명한
햇살 속에서 익어가는
열매들에 핀 들국화 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정겹고 아름다운 소리를
귀담아들어 볼 것입니다.
그 소리는 가을을 전하는 노랫소리. 풀벌레 소리. 가을비 소리.
농부의 타작 소리. 아이의 웃음소리. 가족의 기도 소리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아직도 내 마음밭에서 자라고 있는 몇 그루 나
무를 뽑아낼 것입니다.
그 나무는 불평의 나무. 낙심의 나무. 의심의 나무. 이기심의
나무. 교만의 나무.
무관심의 나무. 게으름의 나무입니다.
- 정용철님의 책 <마음이 쉬는 의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