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스승 -
자연에 바치는 노래
문병란
거리에 나서면
서로 다투어 서있는 드높은 빌딩과 간판들
술집, 다방, 당구장, 호텔, 오락장, 목욕탕,
약방, 병원, 성당, 교회, 학교, 경찰서.
문명 사회의 통계를 보면
수천 배 수만 배 늘어난 온갖 범죄와 질병들
구석구석 병든 지구 위에
굶주림과 전쟁의 상처 낭자하다.
노는 문화가 건강을 좀먹고
약과 병원이 병을 키우고
성당과 교회가 사랑을 가두고
경찰서와 법원이 범죄를 보호하고
마침내 지구는 거대한 정신병동
온갖 문명의 쓰레기 넘치는 곳에서
반생명의 과학, 자연을 파괴하고 죽이는
살인의 지식이 생명을 모독하고 있다.
자연은 말없는 위대한 스승
한 잎 풀잎의 속삭임 앞에
가만히 무릎 꿇고 귀 기울일 때
병은 절로 낫는다.
흙은 생명의 자양,
햇살과 공기와 물은 생명의 보약,
병은 낫는 게 아니라 지니고 산다.
3백 개 뼈마디 속마다
구절양장 오장육부 구석구석마다
은밀한 속삭임 있어 귀 기울이면
동맥을 타고 피가 흐른다.
경락을 타고 우주가 속삭인다.
병은 생명의 스승
수억 개 세포와 온갖 세균의 공존공생까지도
사람을 숨 쉬게 한다.
스스로 치료하는 명의가 되게 한다.
오 위대한 화타여 자연이여.
?
※문병란(文丙蘭):1935년 전남 화순 출생. 1960년 조선대 문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김현승(金顯承)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가로수?(1959. 10), ?밤의 호흡?(1962 7),
?꽃밭?(1963. 11)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순천고, 광주제일고교 교사를 거쳐
조선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70년에 첫 시집 『문병란 시집』을 내었다. 이 시집
서문에 “시는 시인에겐 하나의 신앙과 같은 것”이라 하여 시인은 시를 통해 현실의 부조리나
각종 횡포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보고, 시의 창조를 분만의 고통에 비유했다.
이 시집에는 개인적인 서정이나 실존적 고독과 방황을 형상화한 시들과 역사 및 현실에
입각한 시들이 실려 있다.
1970년대 이후 그는 『죽순 밭에서』(1977), 『벼들의 속삭임』(1978), 『5월의 연가』(1986),
『양키여 양키여』(1988) 등 현실에 입각해서 저항?비판의식을 주조로 한 민족?민중문학
창작에 몰두한다. 역사성과 민중성을 통해 민족민중문학을 건설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민족문학작가 회의 이사,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국민운동본부 대표를 역임했다.
1985년에는 제2회 요산문학상을수상했다. 위의 시집 외에도 『땅의 연가』(1981), 『뻘밭』(1983),
『무등산』(1986), 『견우와 직녀』(1991), 『새벽의 차이코프스키?(1997), 『인연서설』(1999),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2001), 『동소산의 머슴새』(2004), 『매화연풍』(2008)등의 시집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저 미치게 푸른 하늘』(1979), 『어둠 속에 던진 돌멩이 하나』(1986)와 문학논집으로 『현장문학론』(1983), 『민족문학강좌』 (1991) 등이 있다. 『원탁시』 동인으로 활동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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